지금 돌이켜보니 20대 이후부터는 소설보다 자기계발서나 전문지식과 관련된 책 위주만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최근들어 한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된 영혼의 집. 중남미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칠레의 아옌데 정부'에 대해 이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는 "그" 아옌데 집안의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작품이다. 그녀의 첫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재밌게 읽어내려갔다.
집에 <라틴여성작가 대표 소설선> 이란 책이 한 권 있다. 이 책은 총 13인의 여작가가 쓴 소설들을 모아두었는데 그 첫 시작이 이사벨 아옌데의 <복수>라는 소설이다. 그 책도 이 소설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짧았지만 굉장히 인상깊게 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의 글을 써내려 가는 방식이 내가 읽은 두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난 것 같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이 책은 내용이 길어 두 권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 영혼의 집 1권을 집어들었을 때, 마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었을 때처럼 그 책에 깊이 빠져 앉은 자리에서 약 4시간정도 걸려서 다 읽어내려갔다. 어느 정도로 몰입을 했었냐면 2권이 남아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 거잖아!?!"라고 입 밖으로 외쳤다. 그리고 곧 내가 읽은 게 두 권 중 한 권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두 번째 책은 첫 책처럼 한 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열흘정도에 나눠서 읽었다. 그리고 어젯밤 마지막 페이지를 끝냈다.
어제만 하더라도 나는 울보라서 몇몇 구간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알바가 다 늙은 에스떼반와 함께 한 시간을 상상하며 울었다. 왜 눈물이 나왔을까? 원문으로는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한 부분도 굉장히 많았다. 혼자서 스페인어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이 글을 번역해주신 권미선 교수님은 얼굴 한 번 뵌 적 없지만 개인적으로 존경스러운 분 중 한 분이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도 그랬고, 이 책에서도 상상하며 읽게 해주셨다. 소설책 읽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것이었는지 오랜만에 느꼈다.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책이 <클림트>였는데 그것도 벌써 수 년 전이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 인물마다 어떤 한 집단을 대표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성향으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 중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건 로사, 끌라라, 블랑까, 알바와 같은 여자인 인물들. 전체적인 스토리를 굳이 비꼬아서 본다면 "에스떼반이 젋을때부터 지랄맞게 싼 똥을 부인인 끌라라나 손녀인 알바가 다 치우면서 고생하고 결국 에스떼반은 죽을 때나 되어서야 갱생되는 그런 소설아냐?"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막무가내로 살아온 에스떼반의 인생이 한심하고 어떨 때는 분노가 일어 씩씩 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과연 그 시대에... 그런" 에스떼반"이 한 둘이었을까? 그런 그의 행동을 Machismo <마치스모, 남성주의>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사회가 끔찍하다. 게다가 그는 하층민이 아니었으니 더욱 더 허용됐겠지. 소설 속에서 그가 지내던 그 시골마을은 그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 그 마을 이름이 뜨레쓰 마리아쓰였나?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소름이다. Tres Marías.... 마리아는 보통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여성을 뜻하는데, 그러고보니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 중 그 집에서 생활을 못했던 Rosa를 제외한 세 여자.. Clara, Blanca, Alba가 있었다...! 마을 이름에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야...!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고, 그것을 업보라고 부른다. 에스떼반은 젊은 시절 저지른 여러 가지 일들이 업보가 되어 당장 자기한테 돌아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손녀가 자신이 저지른 악행만큼 타인에게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과연 그걸 본 에스떼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악의 연결고리와도 같은 복수라는 선택을 하는 대신 모든 걸 받아드린 알바의 마음은 어땠을까? 실존 인물들이라 생각하고 그 감정을 느껴보려 했지만 잘 상상되진 않았다. 어느정도 비슷하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굉장히 절망적이었을 것 같다.
이 결론을 내기 위해 작가가 쌓아올린 개연성과 스토리는 정말 탄탄하다. 킨들을 통해서 스페인어 원문으로.. Casa de los Espíritus를 구매할까 했는데 ebook으로는 정말 안 들여다볼 것 같아서 아마존으로 주문을 해야하나 굉장히 고민 중이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원작 제목으로 Como agua para chocolate도 갖고 싶고.
아, 없던 책 욕심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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