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5oTBCwrH7k
화전민. 산에 불을 내어 그곳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화전정리' 정책, 즉, 화전민 이주정책을 끝으로 국내에선 더 이상 볼 없던 존재. 아니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21년 2월 KBS에서 '마지막 화전민'이라는 타이틀의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화전민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정착하게 된 한 청년. 그는 이제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부인과 자식들은 도시로 나가고 그곳에 혼자 살고 있다. 밭에선 땅콩을 재배하고 감나무에 감을 장대로 따기도 한다. 10년 전만 해도 '번개처럼' 산 속을 다녔다는 그는 물통을 든 지게조차 버거워보인다. 가끔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들러 하룻밤을 자고 가거나 잠시나마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이 있지 않고선 대화를 나눌 상대조차 없다. 산 속에 우두커니 세워진 그의 집은 아직도 아궁이에 나무 땔깜을 써서 겨울을 난다. 아궁이에서 타들어가는 장작이 뜨거워 보이면서도 차가워 보인다. 차갑고 쓸쓸하게. 40분정도 분량의 이 영상을 보면서 우울함과 슬픔을 맞닥뜨렸다. 과연 그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아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가며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줄곧 혼자인 사람. 끼니 때에 소주 몇 잔으로 그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 왜 그는 혼자가 되었을까? 혼자서 이 이야기를 가상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짧게 소설화해봤다.
화전민
지난 젊은 날,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은 이런 곳에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도시로 가자고 했을 것이다. 화전정리로 정부에서 받는 이사비용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밤낮을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부친의 묘가 있는 곳이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친을 도와 직접 쌓아올린 집, 내가 지어온 농작물들, 그리고 부친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뿐이랴 도시화 된 바깥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남겨지고 부인과 자식들은 바깥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외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 몇 년간은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해가 점점 지나면서 아내도, 자식도 더 이상은 예전같은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들은 도시에 내려와 혼자 고생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그녀의 늘어가는 주름과 얼굴에 서린 원망, 고통을 보고 자라게 된다. 산에 남아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가 한심했을 수도 혹은 분노가 끓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도시라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아버지라는 든든한 믿음의 원천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두운 터널같은 시간, 아버지는 곁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묘를 가꾸고, 제사상을 올리며 아버지의 곁에 있어주는 '좋은' 아들이었으나 정작 자기 자식들에게는 '좋은'아버지가 되질 못했다. 문득, 문득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올 때면 소주 한 잔을 걸치며 어쩔 수 없었노라고 읊었을 것이다. 가장의 본분보다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옳은 일을 한 거라며 수없이 되내었을 것이다. 가끔씩 울리는 전화벨 너머로 아내와 자식들의 안부를 묻겠지만 그 이후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멋적게 '끊으마'란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었으리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신이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슴에 큰 구멍을 만들어 내었지만 내색한 적도 없고 절대 내색하지 않으리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 한 번도 따뜻한 품을 내어준 적이 없기에, 장성한 자식들의 품에 안기는 것도 그에겐 낯설고 어려운 일일테니까. 그렇게 하루가, 또 밤이 지난다.
나는 가끔 혼자 있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 시간이 길어지면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집 밖으로 걸어 나간다. 타인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누군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마음이 놓인다. 과연 그 마음은 정말 혼자 있고 싶은 것일까?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기에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국가의 또래들과 잘 어울리곤 했다. 학교생활에서도 항상 무리를 지으며 '깔깔깔' 웃기 바빴다. 지금은 성향이 조금 바뀌어서 예전만큼이나 만남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밌다고 생각되는 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30-40년을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주제는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도 다루어졌다. 그 중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는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남자가 배구공에게 이름도 붙여주고, 마치 친구처럼 대화도 나누는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그걸 보는 관객도 나중엔 그 영화에 몰입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배구공과 남자주인공의 이별(?)을 슬퍼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 장면을 보고 울컥했다라는 것은 '나였어도 외로워서 배구공이랑 친구를 했겠지.. 그 배구공이 너무 소중했을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겠다.
'주제 넘게 >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이태원 참사 (1) | 2022.10.31 |
---|---|
#18. 왜 그럴까 생각해보기 (0) | 2022.05.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