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에 대한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누가 옳은지 틀린지를 따지는 건 아니었지만,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보는 것이 중요한지 더 큰 숲을 보는 게 더 중요한지, 이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을 따져보니 난 나무를 보는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큰 목적이나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단, 하나씩 차근히 하다보니 어느 순간 어떤 목적지에,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좀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하고 싶어서', '좋아서' 이런 저런 일들을 벌려놓았고, 그런 것들이 쌓이다보니 그게 커리어가 되었고, 나라는 사람의 강점으로 내세울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사람이 되야지!' 라는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지나온 여정이 아닌데, 이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처럼 나무를 보고 길을 채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들을 마주하게 될까? 짧은 인생이지만 여태까지 내가 해온 경험들을 토대로 정리를 해보겠다.
1.
큰 그림(목표)을 그리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보니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ㅡ 아, 이걸 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는 일들이 제법 있다. 어떤 목표를 좇아서 디테일한 계획을 세웠다면 빼놓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런 일들말이다. 그리고 어떤 일들은 그 당시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기도 했다. 중요한 기회로 연결될 수 있었던 그런 순간들을 계획이 없어 놓쳐버린 것이다.
2.
뒤돌아 보니 조금 돌고 돌아서 와야했던 몇 몇 일들이 있었다. 큰 숲을 보고 출발했더라면, 도달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을 구상해놓고,
ㅡ 여기 쯤엔 개천이 있어. 다리를 놓아야 하니, 이런 장비도 챙겨가고... 여기쯤엔 쉴 곳이 없을테니 천막도 몇 개 챙겨가고.....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필요한 순간에 착착착 가방을 펼쳐서 그때 그때 해결을 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길이 주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난 항상 더 좋았다. 가는 길이 막혀 다른 길을 찾는 와중에 더 예쁜 꽃길을 지나온 적도 있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더 맛있는 과일들이 열린 길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 물론 함정도 있었고, 무서운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길도 지나야 하는 순간도 마주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는 길을 즐기는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기억은 미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길을 택하던 그 길에서 얻는 교훈과 경험이 다르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사고방식과 내 경험치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나에게는 밑거름이 되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내 직업(커리어)와 전혀 관련없는 일에 시간을 쏟는 일도 있다.
물론 내가 가진 하루 24시간, 일주일, 일년이란 시간을 내 직업이나 돈과 직결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큰 계획이 없이 살다보니 어떤 일에 몰두를 했음에도 결국 나의 가치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나의 목표만 보고 간다면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더 빠르거나 정확할 것이다. 시간이란 한정적인 자원을 쓸 때 정확한 판단력은 얼마나 중요한 도구가 되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난 여러 갈래의 길을 신나게 걷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 당시엔 앞으로 쭉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신나게 걸었는데 다시 내가 들어온 입구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두번째와 세번째글은 어찌 보면 굉장히 비슷한 맥락이지만 또 다른 내용이기도 해서 분리해서 적어보았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겠지만 인생이라는 길에는 표지판이 없어서 어떻게 가야 옳은지 틀린지 알 수가 없다. 가봐야 아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좋아하는 길인지, 내가 싫어하는 길인지도 한 번 밟아봐야 아는 것이고, 가다가 어떤 문제가 생길지 눈알만 댕굴댕굴 굴리며 가만히 서서 들여다본다고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난 다양한 시도를 해봤기 때문에 두번째랑 세번째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숲만 보는 사람들도 가는 와중에 계획이 잘못된 부분을 마주할 것이고, 예측이 틀린 경험도 할 것이다. 멀리서 보기엔 연결된 길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 가보니 절벽인 곳도 있을 것이다.
두 성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각자의 목적지는 다를 것이고, 어차피 가는 길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 타인의 성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신이 가는 길을 잘 헤쳐나가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하자.
당신은 숲을 봅니까? 아니면 나무부터 보고 나아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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