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행복이라는 것은 수시로 정의가 바뀔 수 있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어려운 개념이다. 아니 어쩌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개념이라고 해야할까? 20대의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건 별거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 특히 여행이 그러했다. 여행이라는 건 준비를 하는 과정, 여행 하는 과정, 끝난 뒤 그걸 떠올리는 과정, 이렇게 세 개의 과정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10년짜리 여권 하나를 거진 다 채운 채 재발급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다. 해외 여행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것, 또 매번 바뀌는 풍경들은 나의 오감을 자극했다. 내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과거로 가볼까? 10대의 나에게는 오히려 20대보다 불안정했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때였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기간이 길어서 친동생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집안의 여러 사정 때문에 가족보단 친구들 사이에서 안도감과 기쁨, 소속감 그리고 행복을 찾던 시기였다. 별거 아닌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즐거워했고, 1000원짜리 닭꼬치나 컵탕수육에 모든 스트레스를 풀던 시기였다. 오락실에서 즐기던 펌프나 200원이면 빌릴 수 있던 만화책들도 내 인생의 큰 일부를 차지한다.
이렇게 먼 과거까지 회상해본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산책을 하다가 내 앞에서 깔깔깔 거리며 웃느라 바쁜 소녀들을 보면서 나의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고무표정으로 산책로를 걷고 있던 내 모습과 대조되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두 개의 영상을 합성한 느낌이랄까?
'지금의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가 '요즘 시대에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유튜브 속에선 ㅡ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성공하는 삶을 사는 방법, 당신이 실패하는 이유, 부동산으로 돈 벌기, 비트코인, 주식ㅡ 에 대해서 쉴 새 없이 떠든다. 행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비추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나는 10대보다 지금 돈이 더 많고
20대보다도 지금 돈이 더 많다.
그럼 나는 행복한 것인가? 아니다.
('그럼 돈이 부족하진 않은지 지갑을 확인해보세요'라는 명언이 있긴 하더라...)
오히려 돈이 없던 지난 20대 시절을 자꾸만 그리워 하는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이다. '왕년에 내가...', '내가 20대에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과거의 영광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내가 속으로 내 스스로에게 저런 말들을 하곤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의 괴리감. 이것이 날 가장 미치게 한다. 그냥 정신없이 바쁘게 살 때에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지만, 일이 바쁘지 않은 날이나 유튜브에서 내가 바라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는 날이면 또 마음 저 깊은 곳까지 풍덩 온 몸을 던져넣고 하염없이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행복이란 뭘까? 왜 인간은 행복해하고 싶어하며,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일까? 지금 스스로 행복한 삶 속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뭐든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내가 먹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느껴지는 것이 마음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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