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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없음/이야기

#42. 스페인 여자의 딸(La hija de la española)를 다 읽었다.

by Anónimo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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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읽는 소설책 중에,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 구유님의 번역본도 너무 좋았지만 원문이 궁금해서 아마존에서 결국 원서를 주문했다. 번역본이 얼마나 좋았는지, 구유라는 사람에 대해 검색을 해볼 정도였음...!!  어쨌든, 스페인 여자의 딸! 책을 읽고 꿈까지 꿀 정도로 강렬했던 그 책이 4일만에 끝났다. 밤마다 잠들기 전 읽다보니 사흘에 쪼개서 완독.

 

소설책의 매력을 맘껏 발산하는 그런 책이었다. 책을 다 읽기 전엔 책을 덮는 순간, 그리고 일상 생활을 하는 순간에도

 

ㅡ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그 어떤 경제/시사 칼럼보다 재밌고 흥미롭게 베네수엘라의 현재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현대 중남미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더라도 동경 127도, 북위 37도에 위치한 이 작은 '꼬레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랑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베네수엘라인들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초반에는 주인공 Adelaida(아델라이다)가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그려내는 모습이 다수 차지한다. 엄마와 같은 이름을 쓰는 그녀는, 엄마와 자신을 마치 하나처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묘사한다.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시위대의 폭동과 시위 세력에 대한 그리고 시위대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도 폭력적 진압을 행하는 정부관계자들이 판을 치면서 그녀의 삶도 위협을 당한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빼앗기고 옆집 Aurora(아우로라)의 집을 두들기지만, 대답은 없다. 잠기지 않는 문을 귀신에 홀린듯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바닥에 죽어있는 아우로라를 발견하는데, 그와 동시에 아우로라가 스페인 여권을 발급받았고 그 여권이 우편으로 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숨겨돈 유로 뭉치도 발견하게 된다. 아델라이다는 스페인 여자가 아니었다. 스페인 여자는 아우로라의 돌아가신 어머니였고, 이 책의 제목인 '스페인 여자의 딸'은 아우로라였다. 아니, 적어도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아우로라가 '스페인 여자의 딸'이었다.

 

지옥같은 베네수엘라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유일한 기회... 아우로라로써 살아가는 것. 아우로라의 시체를 처리하고 그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집안 곳곳을 뒤져가며 노트북 비밀번호, 온갖 서류, 아우로라의 죽은 어머니에 대한 정보 등을 모두 모은다. 베네수엘라에서 출국을 하려면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했기에 스페인에 있는 아우로라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찾는다. 스페인의 가족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토대로 스페인행 티켓을 끊고, 그들의 집을 목적지로 하고... 마침내 그 집을 나선다. 공항에서도 출국절차를 받는 동안 가슴을 졸이는 일들이 생기지만, 결국, 스페인에 도착한다. 공항에 내린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한다. 그냥 그대로 다른 곳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살 것인가, 아니면 아우로라의 가족들에게로 갈 것인가... 결국 그녀는 아우로라의 가족들이 사는 곳에 가서 벨을 누르며 소설이 끝난다. 벨을 누름과 동시에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이 '스페인 여자의 딸'이 된 것이다.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현상 중에 하나가, 자식들이 부모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쓴다는 것이다. 내 콜롬비아 친구의 오빠도 자신의 아버지랑 같은 이름을 썼다. 한국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아닐까 싶은데, (스페인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남미에선 종종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아델라이다가 자신의 엄마와 같은 이름이라고 했을 때 그게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중간중간 베네수엘라의 경제상황을 볼 수 있는 문장이나 상황들이 등장한다. 마트에 가면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는 묘사나, 1인당 살 수 있는 식품의 가짓수를 정해놓는 다던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1가구에 바나나 한 송이? 두 송이?까지만 구매할 수 있었고, 심지어 아예 바나나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묘사한다). 한동안 코로나가 발발했을 때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어떤 품목들은 재고가 없을 정도로 팔려나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게 라면이었던가, 휴지였던가? 베네수엘라에선 그게 일상이다. 내가 즐겨보는 Luisito라는 여행 유튜버도 베네수엘라의 수도 Caracas(카라카스)를 가서 마트 상황이 어떤지 촬영해서 올린 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텅-텅- 비어있다. 

 

 

소설 속 일반 시민은 마르고 나약하게 묘사가 된다. 반면, 아델라이다의 집을 차지했던 여자'보안관'들은 살이 뒤룩뒤룩 찐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장기집권을 했던 우고 챠베스 대통령도 대따 뚱뚱했고, 지금 집권 중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도 뚱뚱한 것이, 마치 북쪽의 그분들 같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차베스가 전국민을 평균 8키로 감량하게 도와(?)줬다'라는 뉘앙스의 '차베스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글쎄...? 

 

 

소설 속에 아레빠라는 음식이 종종 등장하는데,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정말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콜롬비아를 여행할 때 아레빠를 처음 먹어봤는데 보통 아침에 많이 먹고, 아니면 순대같은 Morcillo나 고기를 먹을 때 마치 빵을 곁들여 먹듯이 먹는 요리였다. 그냥 빵 반죽만 구워 먹기도 했지만, 그 안에 치즈나 햄같은 걸 넣어 먹으면 정-말 맛있어서 자주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레빠를 얘기하면서 한 브랜드를 언급하는데.. 바로 이 브랜드이다. 

Harina PAN... 우리로 치면 <곰표>밀가루처럼 남미 어딜가나 볼 수 있는 옥수수 가루 브랜드인데, 베네수엘라 브랜드인지는 전혀 몰랐다. 세상에... 심지어 한국에서도 판매 중인걸로 알고 있음! 난 당연히 콜롬비아 브랜드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 어쨌든 이런 가루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게 베네수엘라의 현 상황... 소설 속에선 권력자들이 다 빼돌려서 비싼값에 되돌려 판다고도 언급되었다.

 

 

 

하나하나 파고 들어가면 이렇게 코멘트를 달 게 정말 많은 소설이었다. 남미 생각나서 재밌기도 하고. 이런 소설을 읽어서인지 요즘 남미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만땅이다... 안가는 건지 못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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