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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없음/이야기

#41. 스페인 여자의 딸 (아직 읽는 중)

by Anónimo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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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 들어봤던 책이지만 선뜻 읽지 않았던 책 중 한 권이었던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는 책. 스페인 원서의 책 제목은 "La hija de la española"이다. 저자는 Karina Sainz Borgo라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작가이다.

2019년 발간된 이 소설의 배경은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남미국가에서 최초로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자유를 선언한 독립국가였지만 지금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어수선하고 살기 어려운 국가 중 하나이다. 석유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석유 채굴후 정제하는 기술력은 없는 그런 나라. 통치자를 잘못만나 수십년 째 국민들만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99년 차베스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삶은 더 불행해졌다. 농담아닌 농담으로 '챠베스 다이어트'라는 표현도 쓰였다. 전국민이 평균 8킬로의 살이 빠졌다고 하는데, 있는 놈들은 유지되거나 더 살이 쪘을테니... 실제 국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 비틀어질 정도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차베스가 죽고 세상이 바뀌는가 했더니 결국 똑같은 좌파에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사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이 나아졌을거란 기대는 않는 것이 좋겠다.

2012년 처음 남미 여행을 갔을 때, 페루의 뜨루히요에서 만난 미국인 남자애가 있었다. 해군을 전역하고 폭스바겐차를 개조해서 차로 남미여행을 하는 친구였는데, 베네수엘라에 갔을 때 바나나 한 개로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던 때라 "우와, 베네수엘라 여행 가볼까?"라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으로 베네수엘라 여행을 검색해봤는데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해서 밖에 나가기는 커녕, 공항도 위험하다는 말에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접었던 기억이 난다.

또 국내 뉴스에서는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마트나 백화점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TV나 냉장고같은 대형 가전제품도 질질 끌며 훔쳐가던 모습도 우리 언론에서 많이 비춰줬었지. 대부분 "시민의식이 없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 같은데 실상을 알면 그렇게만 보진 않겠지.
*이 책을 읽으면 어느정도의 상황인지 얼추 파악이 될 것이다.

그리고 4-5년 전, 학교 선배가 베네수엘라에 갔다 겪은 일들을 들려줬다. 카라카스(수도)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콜롬비아랑 가까운 지역에 다녀와봤는데, 며칠 묵는 동안 혼자서는 절대 외출을 못했다고 한다. 외국인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견찰'들이 제일 까다로웠다고 했다. 하루는 견찰한테 잡혀가서 있지도 않은 마약을 내놓으라며 구금하는 까닭에 달러를 쥐어주고 나왔다고 했다. 이게 견찰들이 벌어먹고 사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대신 그곳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5성급 호텔에 묵거나, 고급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달러나 유로화가 있다면 베네수엘라는 소비하는 데에 있어서 천국이 따로 없다. 물론, 난 절대 가지 않겠지만.


베네수엘라에 대한 설명이 이 정도면 충분할까...? 이 정도의 배경지식만 있어도 이 책을 읽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날 잡고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잠들기 전 읽다보니 이틀동안 반 정도 읽었다. 너무 재밌지만 늦은 시간 잠에 못 이겨 책을 덮다보니 아직 끝내진 못했다. <스페인 여자의 딸>이라는 책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더욱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이미지로 대체해서 상상하며 푹 빠져 읽고 있다. 책 묘사가 너무 생생하고 번역도 매끄러워 몰입이 잘 되는 책이다. 책을 덮을 때는 마치 드라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 혼자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상상하곤한다.


아니 어쨌든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내가 이렇게 티스토리에 일기를 쓰는 것은... 황당하게도 오늘 새벽내내 시달린 꿈 때문이다.

엊그제는 꿈을 안 꿨는데, 오늘은 책이 너무나 강렬했던 나머지 잠이 들었을 때 베네수엘라 한복판에서 눈을 떴다. 나와 동료들은 방송취재를 위해 버스를 타고 카라카스 시내 한복판을 가로 지르고 있었는데 버스가 너무 느려서 계속 불안에 떨었다. 반군세력들이 차를 둘러쌓았고, 뒷좌석에 있던 동료 하나가 잡혔는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 도와주지 못하고 "바퀴야 빨리 굴러가라... "라는 말만 되내었다. 그리고 결국 반군들이 앞길을 막아 차가 섰는데ㅡ

그렇게 꿈에서 깼다. 새벽 6시 30분 알람이 울렸다. 다시 잠들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금세 잠이 들었고, 이번엔 배경이 바뀌어있었다. 남미에는 도시 중심부에 Catedral, 즉 대성당이 하나씩 있는데 대성당으로 도망을 가는 장면이었다. 그러다 좌파세력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낮은 포복자세로 기어 성당 입구쯤에 도달했다. 성당에선 우리보고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는데, 성당 입구도 최루탄이나 총질에 대한 대비책인지 나무 판자로 못질을 했고 아주 작은 입구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 입구로 들어가려니 입은 옷이 두꺼워(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겨울에 입는 오리털 패딩을 입고 있었다) 옷을 벗어 던지고 낑낑 거리며 그 안을 들어가려는 찰나, 핸드폰 전화가 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면서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잠꼬대를 하면서 깼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종종 스페인어로 꿈을 꾸는데, 오늘처럼 긴박하고 무시무시한 꿈은 꾼 적이 없다.


책이 얼마나 생생하면 책에 나왔던 문장들이 고대로 내 꿈에 실현되었다. 창문과 문에 나무 판자로 덧대고 못을 박는 장면이나  '혁명의 아이들'에게 수탈당하는 모습들... 그런 것들을 꿈속에서 볼 수가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뻐근했고, 힘들었다. 아니.. 꿈에서 포복자세로 한참을 기어가는 동안 현실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이 꿈을 기록하고 싶어서, 일하다말고 까먹기 전에 일기를 써둔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이후로, 원서로 소장하고 싶은 책, 두 번째가 바로 이 책이다. 다 읽고 난 뒤 다시 한 번 더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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