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중학교 때에는 성적이 상위 20%대였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전교 1등도 해본 적이 있던 나. 사실 그 때도 공부를 막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항상 성적은 한 것에 비해 잘 나오는 편이었다. 사실 그래서 난 내가 천재인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헛똑똑이' 또는 '허당'같은 호칭이었다. 그 당시 이승기가 1박 2일이 나오면서 '허당'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는데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인가?
꼭 한 두 번씩 이상한 실수를 하거나 헛소리를 해대는 일이 있었다. 흠, 지금은 성격이 많이 변했지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반에서 친구들 웃기는 거에 나름 진심인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하고 사람들이 웃으면 나도 더 웃으면서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는데 언젠가부터 하나의 일에 집중을 하기가 어렵게 느껴졌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별안간 쓸데 없는 내용이 생각이 나면서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미춰버릴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대화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말하고 나면, '아차, 왜 이런 말을 했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주워담기도 힘들었고, 궁여지책으로 어떻게 어떻게 대화의 주제와 연결해서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행동 하기도 했다. 나름 순발력은 있어서 그런 식으로 대처를 해왔고 계속 내 성격의 일부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냥 '원래' 산만하니까.
그러다 성인 ADHD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건 불과 6-7개월 전이었다. 나의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일도 제대로 안되고, 공부도 제대로 안되는 기간을 걸치면서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임상심리상담사가 있는 근처 정신의학과를 예약하고 약 4시간에 걸쳐 성인ADHD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성인ADHD 테스트 비용은 병원마다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약 23만원정도 들었던 것 같다. 오로지 검사비와 그날 진료비만 합쳐서!)
그리고 결과는, 맞았다. 나는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ADHD에도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그 중 충동적인 부분이 비교적 높았고, 인지 능력은 굉장히 떨어졌었다. 인지 능력과 지능은 곧장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왠지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니 덜떨어진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반사회적 성향은 거의 없었으므로 다행이었다. 반사회적 성향이 높은데 충동적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성인ADHD 약은 총 4단계가 있었다. 약이 다른 건 아니고 약물 투여량에 따라 분류를 해둔 것인데, 처음에 1단계부터 차근히 테스트를 해보며 복용을 했다. 나는 2단계와 3단계 약을 번갈아 가면서 먹었다. 각성제의 일종이다.
약을 먹다보면 여러가지 변화를 느끼게 된다.
첫 번째, 몰입이 잘 된다.
내가 하는 일에 몇 시간이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가 하던 작업을 시작하고 끝나는 데에 4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시간이 흐르는 걸 많이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두 번째, 식욕이 별로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일 수도 있는데, 약을 복용하는 기간에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배가 고픈 느낌도 잘 느끼지 못했다. 덕분에 살이 2-3kg 정도 빠지기도 했었다. 원래라면 식사 시간 틈틈히 이것 저것 주워 먹으면서 심심한 입을 달랬을터인데 그 습관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세 번째, 아침 텐션이 좋다.
약의 지속시간이 대략 12시간 정도이므로 오전에 복용을 권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8시쯤 규칙적으로 약을 먹었다. 나는 아침엔 약간 저기압인 경우가 많거나, 그저 그런 기분으로 활동을 하는데, 복용기간에는 조금 텐션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 기분이 좋은 느낌?
네 번째, 간혹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새벽 1시, 2시쯤 누웠을 때 일반적으로는 10분~20분정도 뒤에 잠이 드는데 약의 효과 때문인지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한 번은 새벽 3시 30분까지 뒤척이기도 했다. 담당 선생님꼐서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안정제나 수면제를 소량 주시기도 했는데 요긴하게 썼다. 수면제도 한 알 다 먹진 않고 반으로 잘라서 먹었다.
개인적으로 약 먹는 거, 추천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보통은 이런 기분으로, 이런 집중력으로 작업을 하는구나...' 정도의 깨우침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약이 먹기 싫어져서 한 두어달 약을 중단하고 있다. 원래 나는 약을 꾸준히 먹어본 적이 없는 놈이므로..... 이번에도 흐지부지... 약 대신에 자연적으로 행동들을 하나씩 바꿔 보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정말 어렵다. 성인ADHD를 겪고 있다면 메모습관이나 정리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약만큼.. 효과가 금방 드러나는 건 없어서 또 언젠간 약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복용중인 약물은 콘서타 27mg (약에 alza 27)이라고 써있음.
그 외에 위 보호를 위한 가스모틴정 5mg (약엔 D.W)
데파스정 0.25mg (약엔 DP) : 신경증, 우울증, 정신신체장애에 의한 불안, 긴장, 수면장애 치료제
인데놀정 10mg (약엔 DK) 까지 총 네 개의 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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